산문, 평론 등 많은 작품을 집필하신 만큼, '나를 위한 열 개의 글쓰기 지침'은 무엇을 말하는지 자세히 한번 보겠습니다.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산문과 평론을 쓰시는 분들께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문구에 표시를 해두었습니다.
나를 위한 열 개의 글쓰기 지침
1. 글을 쓸 때는 어떤 내용을 쓴다고 생각하지 말고, 어떤 문장을 쓴다고 생각한다.
“내용을 쓴다고 생각하면 써야 할 글에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한 문장 한 문장, 문장이 생각을 만들어가게 한다. 첫 문장을 잘 써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2. 어떤 호흡으로 읽어도 리듬이 살아야 한다.
“호흡이 좋아야 글이 명료하다. 글 쓰는 사람은 자기 호흡으로 글을 쓰겠지만 독자들이 모두 그 호흡으로 글을 읽어주는 것은 아니기에, 거기서 자주 오해가 생긴다. 특히 긴 문장을 쓸 때는 여러 가지 호흡으로 글을 읽어보고 낱말의 위치를 바꾸거나 조사를 바꾸어 호흡을 조정한다. 어떤 호흡으로 읽어도 명료하게 읽혀야 잘 쓴 것이다. 구두점을 잘 이용한다. 구두점은 독자를 강제로 쉬게 한다.”
3. 상투 어구, 상투 문을 피해서 글을 쓴다.
“글을 쓴 다음, 늘 하던 소리다 싶으면 지운다. 상투 어구는 생각을 안 하거나 생각을 미진하게 했다는 증거이며, 할 필요가 없는 말을 한 것과 다르지 않다. 지우고 다시 쓰다 보면 생각이 변화하고 발전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가짜 생각’과 ‘진짜 생각’이 구분된다. ‘허위의식’이라는 말은 ‘상투적으로 표현되는 의식’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4. 되도록 의성어, 의태어도 쓰지 않는다.
“가능한 의성어, 의태어를 피한다. 의성어, 의태어는 문장에 활기를 주는 듯하지만, 자주 내용의 허술함을 감추어주기에 쓰는 사람까지 속을 수 있다. ‘닭이 울었다’고 쓰면 되지 ‘닭이 꼬끼오하고 울었다’고 쓸 필요는 없다.”
5. 팩트 간의 관계를 강제하지 않는다.
“접속사 등으로 팩트를 강제로 묶으려 하면 글이 담백함을 잃는다. ‘태극기가 펄럭인다. 오늘은 3·1절이다’ 하면 상황과 인과관계가 모두 전달된다. ‘오늘은 3·1절이기 때문에 태극기가 펄럭인다’ 같은 문장은 독자를 바보로 취급하는 셈이 된다.”
6. 짧은 문장이 좋은 문장인 것은 아니다.
“짧은 문장으로 쓰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가들이 그런 조언을 하는 것은 짧은 문장이 반드시 좋은 문장인 것이어서가 아니라, 긴 문장을 쓸 만한 내용 이 없을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입체적인 생각을 섬세하게 드러내려면 긴 문장이 필요한데, 긴 문장을 잘 쓰려면 자꾸 써봐야 한다. 짧은 문장을 많이 쓴다고 긴 문장을 잘 쓰게 되지는 않는다. 문장을 잘 쓴다는 건 긴 문장을 명료하게 쓸 수 있다는 말과 같다.”
7. 형용사의 두 기능인 한정과 수식을 구분해야 한다.
“글을 쓸 때, 형용사를 쓰지 말라는 말이 있다. 형용사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하나는 수식, 다른 하나는 한정이다. 이 둘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수식 기능의 형용사는 줄일 수 있지만 한정 기능의 형용사를 없애면 모호한 글이 된다. 글을 단단하게 하는 것은 적절한 한정 기능의 형용사다. 표현에 자신감이 붙게 하는 것도 한정 기능의 형용사다.”
8. 속내가 보이는 글은 쓰지 않는다.
“글을 쓸 때, 자기 자신을 잘 고백하고 자기 안에 있는 깊은 속내를 드러내면 좋은 글이 된다. 그런데 속을 드러내는 건 좋지만 속이 보이게 쓰면 안 된다. 속을 드러내는 것과 속 보이게 쓰는 건 다르다. 글로 이익을 취하려 하거나 사태를 왜곡하면 속 보이는 글이 나온다. 속 보이는 글은 사실 자기 속내를 감추는 글이다.”
9. 한국어에 대한 속설을 믿지 않는다.
“한국어는 구두점이 필요 없다거나 한국어는 사물 절을 쓰지는 않는다는 등의 한국어에 대한 속설 이 많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서양에서도 구두점은 16세기 이후에 쓰기 시작했다. 한국어를 요순시대의 말로 남아 있게 할 수는 없다. 사물 절을 쓰지 않는 건 한국어의 어법이 아니라 한국의 풍속일 뿐이다. 모든 풍속이 미풍양속은 아니다. 토속적인 말투를 질펀하게, 실은 상투적으로, 늘어놓는 글들이 있는데, ‘보그 병신체’, ‘박사 병 신체’와 맞먹을 ‘토속어 병 신체’라고 해도 무방하다. 피해야 할 것은 낯선 어투가 아니라 상투적인 어투다.”
10. 문장이 가지는 실제 효과를 생각한다.
“말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 리듬도 좋은데 감동이 없는 글이 많다. ‘작은 눈도 크게 뜨고 좁은 길도 넓게 가자.’ ‘운전은 경주가 아니다.’ 두 개의 문장이 모두 교통안전 표어인데 어느 쪽이 효과가 있을까. 글의 효과와 설득력은 대체적으로 사실성에서 온다.”
- 21세기문학 2014년 봄호
2번에 나오는 구두점은 쉼표와 마침표를 말합니다. 쉼표든 마침표든 독자를 강제로 쉬게 하는 힘이 있지요. 글을 쓸 때부터 문장의 어느 부분에서 쉬어야 하는지, 의도하여 쓸 수 있습니다.
어떤 호흡으로 읽어도 명료하게 읽혀야 잘 쓴 것
어떤 글이든 공통되는 사항인 듯합니다. 잘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 글에도 리듬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노래 가사를 그냥 글보다 쉽게 외울 수 있는 것도 이 리듬 때문일 것입니다.
잘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 가급적 문장을 짧게 쓰면 좋지만, 무조건 문장을 짧게 쓰는 것이 답은 아닙니다. 짧고, 길고의 리듬이 필요합니다.
3번의 상투적인 글을 피하라고 하는 건 다른 글에나 강의에서도 많이 보셨을 겁니다.
'상투적'이란 말을 사전에 찾아보면 ' 늘 써서 버릇이 되다시피 한. 또는 그런 것. '이라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너무 많이 들어본 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런 말은 퇴고를 하면서 깔끔하게 걷어내면 좋겠네요. 잘 읽히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말입니다.
또한, 글을 억지로 꾸미려고 하다 보면 티가 납니다.
수식어가 과하게 많을수록 그렇죠.
4번에는 의성어, 의태어도 가급적 쓰지 않는다고 했는데요. 평론이나 산문 같은 글을 쓸 때 적용되는 말인 듯합니다.
시나 소설, 동화 등의 문학작품에서는 적절히 사용해줘야 생동감이 느껴지니까요.^^
6번에서, 짧은 문장이라고 좋은 문장은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복잡하고 입체적인 생각을 섬세하게 드러내려면 긴 문장이 필요한데, 긴 문장을 잘 쓰려면 자꾸 써봐야 한다."
긴문장을 정확하게 잘 쓰는 것이 문장을 잘 쓰는 거라고 하죠.
긴 문장을 쓰려다 보면, 주술 호응이 흐트러지거나, 비문이 나올 확률이 높기 때문에 보통 짧게 쓰는 것을 권합니다. 문장의 리듬을 위해 긴 문장을 쓸 때는 비문이 나오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지요. 퇴고를 많이 하면 됩니다.
좋은 문장의 글을 많이 읽고, 많이 써 보는 것도 물론 도움이 되겠지요.
정확하게 잘 쓴 문장이라고 해도, 긴 문장이 너무 자주 나오면 읽다가 지칩니다. 2번에서 강조한 것이 그거죠. 리듬감. 짧고 긴 문장의 적절한 조화.
처음부터 이런 거까지 신경 쓰며 쓸 수는 없습니다. 개요에 맞춰 쭉쭉 러프하게 써놓고, 퇴고할 때 다듬으면 됩니다.
글은 고치면 고칠수록 좋아지니까요.
"수식 기능의 형용사는 줄일 수 있지만 한정 기능의 형용사를 없애면 모호한 글이 된다. 글을 단단하게 하는 것은 적절한 한정 기능의 형용사다."
형용사의 기능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하죠. 수식과 한정.
문장을 너무 많이 꾸미려 들면, 깔끔하지 못한 문장이 된다고 했습니다.
퇴고 과정에서 불필요한 수식 형용사는 삭제하는 게 좋지요.
그러나 한정 기능의 형용사를 없애면 모호한 글이 된다고 합니다.
문장을 수식하는 기능을 하느냐, 범위를 제한하는 한정의 기능을 하느냐에 따라,
퇴고할 때 삭제를 해야하는지 추가를 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겠네요.
9번의 내용도, 머릿속에 각인하며 표시해 두었습니다.
"모든 풍속이 미풍양속은 아니다."
피해야 할 것은 낯선 어투가 아니라 상투적인 어투다.
상투적인 것을 피해야 한다는 말은 여기서도 강조하고 있네요.
참고로, '사물절'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절은 문장의 '구절'할 때 그 절입니다. 예상하시죠?
사물 절은 사물이 주어로 오는 절, 즉 주어와 서술어로 구성되어 있으나 완성된 문장이 아닌,
사물이 주어인 절을 말하는 듯합니다.
사전에 나오는 명칭은 아니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말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 리듬도 좋은데 감동이 없는 글이 많다."
글의 효과와 설득력은 대체적으로 사실성에서 온다.
사실성에 입각하여 문장을 써야 된다는 것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참고가 되셨길 바랍니다.
네이버캐스트 인생스토리에서 작가님의 인터뷰 내용이 있어 살펴봤는데, 그중 인상 깊은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황현산 선생님 인터뷰 내용 中
황현산 문학평론가
술에 취해도 매일 책을 읽는 정신...
존경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면 그만큼 책을 읽는 것이 생활화 되어야 하죠.
동화를 배울 때, 읽는 것과 쓰는 것을 9:1로 하라고 들었습니다.
좋은 글을 읽는 것은 그만큼 도움이 되니까요.
저는 그냥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도, 여러 번 읽고 분석해가며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만한 의미가 있는 책이라면 말이죠.
그렇게 책읽기를 하다 보면, 쓰는데도 분명 도움이 됩니다.
분석하며 책을 읽으려면....
음, 만취는 좀 곤란하겠네요.
젊은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
시간을 잡으라, 나를 붙잡으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알차게 시간을 사용하자, 나를 위한 시간을 쓰자.
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리 치열하게 살았더라도,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인 만큼 과거가 그립고 아쉽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낭비하며 살았다면 더더욱 과거에 매이겠죠.
오늘이란 선물을 잘 사용해봅시다.
쓰다 보니 길어진 것 같군요.
^^
글을 쓰는데도 형식과 방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꼭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하는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적인 형식은 받아들이면서도, 나만의 방식이나 규칙 등이 있을 수 있죠.
작법서를 보거나, 유명한 작가 선생님이 전수하는 비법 들을 보면서 모두 따라 할 수는 없습니다.
나무꾼 한 사람이 연못가에서 큰 나무를 베다가 번쩍 든 도끼를 놓쳐서 그 도끼가 연못물 속에 풍덩 들어가 버렸습니다. 한없이 깊은 연못 속에 들어갔으니까 다시 찾을 생각도 못하고 나무꾼은 그냥 연못가에 쓰러져서 탄식을 하고 있노라니까 어여쁜 물귀신이 나와서 무엇 때문에 탄식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래 도끼 잃어버린 말을 하니까,
"염려 말게, 내가 찾아다 줌세."
하고, 물속으로 들어가더니 한참 만에 번쩍번쩍하는 좋은 금도끼를 가지고 나와서,
"네게 이것이냐?"
고, 물으므로 나무꾼은 정직하게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들어가더니 한참 만에 이번에는 좋은 도끼를 들고 나와서 이것이냐고 물었으므로 또,
"그것도 아니올시다."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세 번째 또 들어가더니 한참 만에 이번에는 보통 쇠도끼를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나무꾼은 그제야,
"예예, 그것이 제 것이올시다."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물귀신은 나무꾼의 마음이 정직한 것을 기특하게 여기고 그 금도끼 은도끼까지 모두 내주었습니다.
마음 정직한 나무꾼이 은도끼 금도끼를 얻어서 수가 난 것을 보고 샘 잘 내는 친구 한 놈이 그 길로 자기 집 도끼를 들고 연못가로 뛰어가서 일부러 도끼를 연못물 속에 던져 넣었습니다.
이번에도 물귀신이 나와서 도끼를 잃어버렸단 말을 듣고 다시 들어가더니, 번쩍번쩍하는 좋은 금도끼를 들고 나와서,
"네게 이것이냐?"
하였습니다.
"예, 그것이 제 것이올시다."
하고, 두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어여쁜 물귀신은 눈을 크게 뜨고,
"예끼 못된 놈."
하고 금도끼를 주지도 않고 그냥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가지고 갔던 도끼만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1924년 2월 《어린이》 2권 2호에 발표.
[동화 감상평]
"정직하게 살자."
우리가 알고 있는 '금도끼와 은도끼' 이야기와 비슷하네요.
'금도끼 은도끼'는 『이솝우화』에 수록된 고대 그리스의 전래동화이다.
『이솝우화』는 1896년에 출간된 『신정 심상 소학(新訂尋常小學)』 학부 편 전 3권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는데요.
이 설화는 개화기 학생들의 교과서에 번역되어 수록되면서, 한국적 이야기로 정착되었다고 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금도끼 은도끼' 줄거리
나무꾼이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연못에 도끼를 빠뜨렸다. 연못에 앉아서 울고 있을 때, 산신령이 나타나 우는 사연을 물었다. 사연을 들은 산신령은 금도끼와 은도끼를 가져와서 이것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나무꾼은 자신의 도끼는 쇠도끼라고 정직하게 말했다. 나무꾼의 정직함에 감탄한 산신령은 금도끼와 은도끼를 모두 주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욕심쟁이는 일부러 도끼를 연못에 빠뜨리고 오히려 화를 당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금도끼은도끼 (한국 민속 문학 사전(설화 편))
(그리스 전래동화가 한국적 토착화를 거치면서 헤르메스가 산신령으로 변모하였음.)
익숙한 이야기와 비슷하여 한 번 찾아 보았습니다.
다시 방정환의 '금도끼'로 돌아와 감상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방정환의 '금도끼'에서는 산신령 대신에 물귀신이 나오는군요. 나무꾼은 정직하게 자신의 도끼는 쇠도끼라는 것을 말해서 상을 받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욕심쟁이는 금도끼가 자기 도끼라고 거짓말합니다. 그래서 화를 당하는 결말도 설화와 비슷하네요.